문형우 집사의 헌신

"내 눈을 빼주세요."

   1962년, 교역자가 없는 가운데 삼례교회의 도움을 받아 건축기성회를 조직하고, 전주성결교회 이대준 목사가 인도한 부흥회(4월 2일-4일)에서 모은 157,000원의 헌금으로 건평 29평의 성전 건축을 기공하여 기초공사를 하고 목재는 구입하였으나, 공사비 부족으로 성전 건축이 중단되었다.  
   이 때 문형우 집사는 교회건축이 중단된 것과 자신이 헌금할 돈이 없음에 가슴아파하며 기도하던 중 “맹인도 다른 사람의 눈을 이식하면 볼 수 있다”는 신문 기사를 보고 자신의 눈이라도 팔아서 성전 건축을 완공하여야 하겠다고 결심하고 예수병원을 찾아갔다. 
   그러나 문집사의 눈을 검사해 본 병원에서는 “정상의 눈을 빼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돌려보냈다. 그러나 그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예수병원을 찾아와 “내 눈을 빼달라.”는 문 집사를 이상하게 여긴 의사가 궁금해서 눈을 빼어야 하는 이유를 묻게 된다. 문 집사는 “하나님의 성전이 건축을 하다가 중단된 것이 가슴 아프고, 또한 하나님께 바칠 헌금이 없는 것이 더욱 가슴 아파서 내 눈을 빼어 팔아서라도 헌금을 드리려고 합니다.”고 말했다.  
   결국 눈물 어린 문형우 집사의 헌신의 사연이 병원에 알려지고 각 교회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독립문(현, 한우리성결교회)교회의 임영재 목사는 부흥회 때마다 그 사실을 간증하여 전국 각지의 교회와 성도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금지환, 손목시계, 헌금 등을 보내주어 건축에 도움을 주었다. 그리고 전주성결교회의 이대준 목사와 미국의 마두원(馬斗元, D. R. Malsbary) 선교사가 하리교회를 방문한 후 이 사실을 미국교회에 알리고 미국의 모 기관지에 기고(起稿)하여 기사를 읽은 미국 교인들이 99,700원의 헌금을 보내주었다. 이렇게 모인 총 119,774원의 헌금으로 성전의 외부공사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문 집사의 간절한 소망과 헌신을 하나님은 외면치 아니하시고 놀라운 축복으로 응답해주신 것이다. 문형우 집사는 목회자의 길을 걷다가 소천하였고(수동형으로 쓰거나 다른 표현), 아들 문 사무엘 목사(경북 다수성결교회)가 대를 이어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다.

   김정무 원로장로는 위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기억하고 있다. 2021년 2월 21일에 교역자실에서 증언하였다.  
 
   “예배 인도는 삼례교회 장로님들이 번갈아 오셔서 설교하셨는데 그 무렵 다른 곳에서 이사 온 문형우 집사님과 김찬식 장로님, 정경순, 박한나 집사님의 헌신으로 부흥하여 청년들과 교인들이 늘어났다. 교회가 좁아 교회당을 건축하자고 하며 문 집사님이 주축이 되어 62년도에 설계도 계획도 없이 터 닦기를 시작하여 온 교인이 앞 냇가에서 자갈과 모래를 이고 지고 나르며 기초를 끝내고 보니 28평 정도가 되었다. 겨우 기초공사는 우리 힘으로 열심히 마쳤는데 이후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공사들을 진행하려면 기술자와 돈이 필요했는데 돈이 없어 공사를 중단하고 기도만 할 뿐이었다.” 
   “어느 날 전주교회 이대준 목사님이 왔다 가시고 문형우 집사님이 새벽 기도 중에 갈라디아서 4장 15절에 바울이 ‘교인들이 눈이라도 빼어 주었을 것이다.’ 라는 말씀에 감동이 되어 눈을 팔아 건축비를 마련하겠다며 예수병원에 찾아가 눈이 필요한 사람이 있으면 눈을 팔겠다고 하였다. 의사는 문형우 집사님에게 이유를 알아야하고 동의서를 받아야한다고 하며 이유를 묻자 교회를 지어야 되는데 돈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수술 대신 안과 과장이 편지를 써주시며 치리 목사님께 전하라고 하셨다. 편지를 보고 목사님은 부흥사인 이리 삼광교회 임영재 목사님께 부탁하여 부흥회에 다니며 간증을 할 수 있게 되었고 곳곳에 알려지고 감동되는 분들이 조금씩 헌금을 해주셨다. 그때 이성봉 목사님께서도 미국 선교사와 함께 우리 교회를 방문하셨고 미국에서도 약간의 도움이 있어 교회 건축이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이 무렵 삼례 김완식 장로님이 우리 교회 교역자로 부임하셔 전도사님이라 부르고 전도사님과 문형우 집사님이 건축을 주도하셨다. 외부 공사를 65년도에 3년 만에 마치고 68년도 봄에 바닥 마루를 깔고 문형우 집사님과 김찬식 집사님이 장로로 장립하였다.”